1979년 반월출장소 시절부터 계속 쓰고 있는 시청
왼쪽은 90년대 중반에 지은 별관, 오른쪽은 시의회다
경기도 안산시에는 2개의 일반구가 있다
상록구
![PYH2011021807750006100_P2[1].jpg 구 이름을 참 잘 지은 안산시 이야기](//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200524/486263/1641343504/2918527086/ebe315bf00ae308693b6666f52e34304.jpg)
시청보다 웅장한 구청1
![249124001[1].jpg 구 이름을 참 잘 지은 안산시 이야기](//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일제 강점기 당시 소설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서 따왔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채영신'이라는 인물은 실존 인물 '최용신'을 모델로 삼은 인물이었다
또한 소설 속에서 채영신이 활동했던 '청석골'은 바로 지금의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당시 수원군 반월면 본오리) '샘골(=천곡)'이었다
실제로 최용신은 현재의 안산 지역에 '샘골(천곡)강습소'를 설립해 교육에 힘썼다
그러나 1935년 1월 23일 과로와 각기병으로 인해 향년 27세로 숨을 거두었다
유해는 본오동 인근의 일리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1975년 본인이 활동했던 본오동으로 이장되었다
현재 안산시에는 상록수역과 최용신기념관, 용신로가 존재한다
상록수역은 문학 작품이 역명으로 쓰인 최초의 사례로, 상록구 설치 한참 전인 1988년 안산선 개통 당시에 명명되었다
(공사 당시에는 '용신역'이었지만, 철도청에서 '좀 더 널리 알려진 소설 이름이 낫겠다'고 판단하여 상록수역으로 바뀌었다)
단원구
![1196408_1076595_1702[1].jpg 구 이름을 참 잘 지은 안산시 이야기](//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시청보다 웅장한 구청2그 와중에 뒤로 보이는 와~스타디움
![bb9860142c9a634b78f5dfd1bd1375f4c31583ddf9cc86e5727e67a3594ab109f988882e3d604f432c4c22f5ceddb7a0af8bdbbe7161a39480726639340498e0f8111dd3ea8cd4c9598f50e5ff29ba8cbf53e89d9283fc071b3609f74[1].ren.jpg 구 이름을 참 잘 지은 안산시 이야기](//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
'김홍도'의 호에서 따왔다
당초 고향이 안산이냐, 서울 마포구냐를 놓고 논쟁이 있었으나, 안산은 안산 고향설을 강력하게 밀었다
그리고 실제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러 물증을 봤을 때 안산 출생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이 되었다
정확한 출생지는 현재의 안산시 단원구 성포동 갯가 마을(당시 안산현 군내면 성포리)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조선 최고 화가’ 김홍도 출생지 처음 밝혀냈다, KBS, 2019.12.4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56&aid=0010770319
‘조선의 천재 화가’ 단원 김홍도, 안산 성포리 갯마을서 태어났다, 한겨레, 2019.12.3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2476969
안산시는 이를 토대로 '단원미술관'을 성포동에 만들었으며, 경기도에서도 이러한 점을 반영하여 도립 '경기도미술관'을 안산시 단원구에 설립했다
![20180908103243151960[1].jpg 구 이름을 참 잘 지은 안산시 이야기](//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또한 안산은 매년 김홍도축제도 열고 있다
![sL1cFIIOh530f96kZl16ni1-bBB4zHAAbSrSD696m6WtbI6iDzcC5qGJzOoeJBm-KIaIwRjaF63PWS0gIClK-iuBOgYJdtqSC6FuDH1uf2oUQnX_wBQnq74rp4RMvfUbpaE[1].ren.jpg 구 이름을 참 잘 지은 안산시 이야기](//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archmain[1].ren.png 구 이름을 참 잘 지은 안산시 이야기](//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또한 관내에는 '단원중학교', '단원고등학교'도 존재한다
(단원고등학교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많은 희생자들이 나왔던 그 학교가 맞다)
이 외에도 단원구에는 단원로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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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구 명칭 결정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지금부터 그 역사를 살펴 보도록 하자
안산시의 간략한(?) 근현대사
본래 안산군은 1914년 일제의 부군면 통폐합 때까지 존재했던 군이었다
그러나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안산군은 완전히 박살이 나고 만다
안산군 와리면, 대월면, 마유면 → 시흥군 군자면
안산군 군내면, 인화면, 초산면 → 시흥군 수암면
안산군 월곡면, 성곶면, 북방면 → 수원군 반월면
고려 현종 9년(1018년)에 안산현,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에 안산군이 된 이래 근 900년 내내 존재하던 '안산'이라는 지명이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만 것이다
(조선시대 전체인 518년 동안에도 내내 안산군으로 남아 있었다)
1979년 준공 당시 반월지구출장소 청사
위에 나온 현재의 안산시청과 비슷하다고 느껴진다면 제대로 본 것이다
현재 안산시청은 이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별 볼 일 없던 경기도의 한적한 농어촌 지역이던 구 안산군 지역은 1970년대 수도권 신공업지구 건설부지로 선정되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1979년 8월 10일 구 안산군 일부 지역에 '반월출장소'가 생겼다
반월공단이 생기며 반월출장소의 인구는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1979년 당시 2만여 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불과 6년 만인 1985년에 10만 명을 앞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1986년 1월 1일 반월출장소 전역이 안산시로 승격되었다
당초 '반월시'로 승격 예정이었지만 향토사학자들의 노력으로 '안산'이라는 이름을 72년 만에 되찾게 되었다
1994년에는 화성군 반월면 팔곡일리, 건건리, 사사리, 옹진군 대부면이 안산시로 편입되었다
(행정동 반월동, 대부동)
또한 1995년에는 시흥시 수암동, 장상동, 장하동, 화정동 일부가 안산시로 편입되면서 안산시의 시역은 더욱 넓어졌다
(행정동 안산동)
빨강 - 구 시흥군 군자면
초록 - 구 시흥군 수암면
파랑 - 구 화성군 반월면
보라 - 현재의 안산시
물론 구 안산군 전역이 안산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위 지도 중 대부도를 제외한 나머지 영역들이 구 안산군의 영역이었지만, 일부는 상실하였다
어쨌거나 시 승격 이후 안산시의 인구는 가파르게 증가했다

1986년 시 승격 당시 12.7만 명 수준이던 안산시의 인구는 10년도 되지 않아 1995년 50만 명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안산시는 일반구를 설치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그러나 안산시에 실제 일반구가 설치된 것은 그로부터 7년이나 더 지난 2002년이었다
그런데 사실 처음부터 구 명칭이 현재와 같이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2002년 7월 10일 안산시 구청명칭 심사위원회 표결 결과 (1차)
동부 지역은 현재와 같이 순조롭게 '상록구'로 선정되었다
'동구'는 2위를, 안산 지역에서 태어나 안산에서 활동한 실학자 '이익'의 호를 딴 '성호구'는 3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서부 지역이 문제였다
'별망구'와 '서구'가 8표로 동률을 이뤘다
결국 '상록구'와 맞추기 위해 '별망구'가 선정되었다
정작 현재의 구 명칭인 '단원구'는 고작 1표만 얻으며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럼 대체 '별망'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thefestival_1389106890[1].jpg 구 이름을 참 잘 지은 안산시 이야기](//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이는 조선 초기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안산군 지역에 만든 '
별망성'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당시 조선은 이곳에 '초지량'을 설치하고, 진지의 명칭을 '초지진'이라고 하였다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의 '초지'가 바로 그 '초지'다)
그러나 안산에 있던 초지진은 효종 7년(1656년) 강화도로 옮겨지게 되면서 기능을 상실했다
이후 사실상 방치 상태로 남아 있다가 6.25 전쟁 때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1950년대에 간척사업을 하는 데 별망성 성벽을 사용하면서 그나마 있던 흔적도 거의 다 사라졌다
현재의 별망성터는 1988년 일부분만 복원된 상태다
![1536540110870[1].jpg 구 이름을 참 잘 지은 안산시 이야기](//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아무쪼록 현재 안산시에서는 '별망성예술제'도 개최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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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main[1].ren.png 구 이름을 참 잘 지은 안산시 이야기](//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관내에 '별망초등학교'와 '별망중학교'를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산시민
"'별망구'가 뭐냐!!! '할망구' 같다!!! 바꿔라!!!"
정작 안산시민들은 '별망구'라는 이름에 크게 반대했다
'할망구'가 연상되고, '망'자가 들어가는 것이 어감상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안산시는 구 명칭을 다시 정할 수밖에 없었다

2002년 7월 23일 안산시 구청명칭 심사위원회 표결 결과 (2차)
이번에는 서부와 동부가 짝을 지어 심사를 했다
그 결과 '별망성구-상록수구'가 1표 차이로 최다득표를 해 구 명칭으로 선정되었다
2글자에서 탈피해 '별망성'이라는 풀 네임을 사용함으로써 '할망구' 같다는 비판을 피해가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안산시민
"아니, '별망' 자체를 바꾸라니까?"
안산시민들은 '별망'이라는 이름 자체에 대해 반대했다
'망(亡)', '멸망' 따위가 연상되기 때문이었다
결국 안산시는 2002년 8월 구청명칭 심사위원회 대신 시민 여론조사로 구 명칭을 정하기로 했다
2002년 8월 8~10일 안산시민 여론조사 결과 (3차)
시민 4,784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는 구청명칭 심사위원회 표결 결과와 완전히 딴판이었다
2차례의 심사위원회에서는 최하득표를 했던 '단원구'가 정작 시민들에게는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결국 안산시는 2002년 8월 20일 시민 여론조사 결과를 수용해 구 명칭을 '상록구'와 '단원구'로 확정하고, 이를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에 보고했다
![0355FA4050A051691E[1].ren.jpg 구 이름을 참 잘 지은 안산시 이야기](//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190F2C3F50A0518A1B[1].ren.jpg 구 이름을 참 잘 지은 안산시 이야기](//image.fmkorea.com/classes/lazy/img/transparent.gif)
그리고 2002년 11월 1일 마침내 상록구청과 단원구청이 개청하면서 안산시에는 2개의 구가 생기게 되었다
2개 구청은 오랜 기간 동안 컨테이너 임시청사를 사용했다
상록구청은 2011년 3월, 8년 4개월 만에 현재의 정식 청사로 옮겼다
단원구청은 2017년 9월, 무려 14년 10개월 만에 현재의 정식 청사로 옮겼다
(이는 대한민국 임시청사 최장기록이라고...)

안산시의 인구는 이후로도 계속 증가해 2006년 70만 명을 돌파했다
(내국인 인구로는 2007년)
그러나 내국인 인구는 2011년 7월 716,423명으로 정점을 기록했으며, 총 인구도 2013년 12월 762,915명으로 정점을 기록했다

특히 내국인 인구는 2013년 11월부터 2020년 1월까지
무려 75개월(6년 3개월) 연속으로 인구가 감소했을 정도로 인구 유출이 심각했다
내국인 만으로도 71만이 넘던 인구는 어느새 65만까지 내려앉았다
인구 유출이 얼마나 심각했냐면, 이 기간 동안 안산시의 인구를 추월한 지자체가 4개나 있었을 정도였다
경기도 화성시 - 2017년 10월 추월
경기도 남양주시 - 2018년 3월 추월
전라북도 전주시 - 2019년 10월 추월
충청남도 천안시 - 2019년 11월 추월
그나마 2020년 2월 76개월 만에 인구가 증가세로 돌아섰고, 3~4월에도 3개월 연속 증가한 상황이다